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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2. 12世 〉12. <부정공>증가선대부형조참판휘원필행장(贈嘉善大夫刑曹參判諱元弼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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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정공>선교랑공휘수묘표(宣敎郎公諱晬墓表)
宣敎郎公諱晬墓表 順天住巖坊河金谷可藏洞嶝枕艮原有崇四尺者宣敎郎趙公衣履之藏也而尚無揭德之文九世孫光鉉判奎東必袖其家狀而訪不佞于天德山下屬筆于不佞辭以昏聵而不獲按公諱晬字輝遠玉川人系出高麗侍中諱璋爲登譜初祖三傳諱元吉號農隱麗朝有勳封玉川府院君享武夷祠及武曲祠生諱瑜號虔谷官副正入我朝徵以漢城判尹不就享謙川祠再傳而諱智崙官察訪兄弟四人友愛尤篤築相好亭長枕大被昕夕同處有春津之風焉高祖諱穩尚瑞院直長曾祖諱淑璟忠順衛祖諱大春號三灘勵節校尉築漾碧亭與金河西白玉峰有道義交考諱懋以才行薦除禮賓寺參奉妣文化柳氏認其考也有婦德萬曆甲申十月二十八日生公于里第天性純粹自幼能知愛敬之道晨昏定省不以寒暑奔忙或懈事之巨細必經禀而後行一動一靜唯諾必循規度御家以和閨門之内雍雍焉睦睦焉遭外艱情文俱至襟懷澹泊與物無競持身誠敬爲主隱居岩阿琴書自誤其於世俗芬華泊如也甲午十一月十七日終年七十一配宜人光山金氏金汁女丙申生辛巳卒墓合祔子曰時億通德郎 贈承政院左承旨二子時奕女朴鼎鉉朴偉朴敦孝張軫也孫曰維章東山別庄與黃雲溪信龜甚善嗚呼以公純美之資蘊抱奇業必有可觀而竟坎壈以終固爲可慨然繁柯茂葉映蔚繩繩由於公之餘蔭之未艾也夫可敬也夫 丁未春三月 傍裔 敏植 謹撰 선교랑공휘수묘표(宣敎郎公諱晬墓表) 순천 주암방 하금곡(住岩坊河金谷) 가장동(可藏洞) 등성이 간좌원에 四척 높이의 분묘는 선교랑 조공의 유택인데 아직 덕행을 기록한 문자가 없으므로 九세손 광현(光鉉), 판규(判奎), 동필(東必)이 그 가장을 마련해 가지고 나를 천덕산(天德山) 아래로 찾아와 묘표를 부탁한다. 내가 노혼으로 사절하다가 할 수 없이 가장을 살펴보니, 공의 휘는 수(晬)요, 자는 휘원(輝遠)이며 옥천인인데 건곡선생 휘 유(瑜)의 후손 삼 탄공 휘 대춘(大春)의 손자로 고의 휘 무(懋)는 재행으로써 예빈시 참봉을 천제하고 비는 문화유씨 인(認)의 딸로 부덕이 있었다. 만력 갑신년(一五八四) 十월 二十八일 본제에서 공이 출생하였는데 천성이 순수하여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할 도리를 알고 밤과 새벽으로 보살피는 것을 춥고 더우며 분망하다고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대소사를 반드시 여쭈어 본 뒤에 행하고 한 번의 동정, 한 번의 유락을 반드시 법도에 따라 행하며 집안을 화기로써 다스리니 집안에 화기가 가득하였다. 부친상을 당하매 정과 예가 함께 지극하고 마음과 뜻이 깨끗하여 물건을 가지고 다 투지 아니하며 몸가짐을 성실과 공근으로써 하였다. 바위 언덕에 은거(隱居)하며 거문고와 글로 스스로 즐거워하고 세속에 향기롭고 화려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담담한 표정이었다. 갑오년 十一월 十七일에 향년 七十一세로 별세하고 배는 의인 광산김씨 영집(令汁) 의 딸인데 병신년에 태어나고 신사년에 별세하여 묘소는 합부하였다. 남장 시억(時億) 은 통덕랑으로 증 승정원좌승지요 차는 시혁(時奕)이며, 여는 박정현(朴鼎鉉), 박위(朴偉), 박돈효(朴敦孝), 장진(張軫) 처요, 손자 유장(維章)은 동산별장(東山別庄)에서 황운계 신구와 더불어 심히 좋아하였다. 아! 공의 순미한 자질로서 포부와 기특한 사업을 행하였더라면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을 터인데 마침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마치었으니 슬픈 일이다. 그러나 번성한 가지와 무성한 잎이 계승하여 울연히 비치니 이는 공의 끼친 음덕이 다하지 아니한 것이리라. 공경할 지어다. 방예(傍裔) 민식(敏植)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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